우송대 실전네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먹을 것도 많고 생각 없이 걸어 다니기도 좋아서 이리저리 산책을 나가는데, 분식류를 너무 좋아해서 주변에 떡볶이 집은 한 번씩은 다 들어가 본 거 같지만 이상하게 오늘 갔던 우리 할머니 떡볶이집은 제가 가고 싶으면 예비신부님이 다른 거 먹고 싶어 하고 예비신부님이 먹고 싶어 하면 제가 반대로 다른 거 먹고 싶고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은 날을 정하고 "여기서 먹는 거다, 다른데 정하기 없기"라고 선을 그어놓고 방문해 봤습니다.
당시에 배가 너무 고파서 빠르게 나갈 준비를 마치고 예비신부님과 손 꼭 잡고 길 건너편에서 간판을 보는데 벌써부터 군침이 살살 돋았습니다. 입구에 들어가서 놀랐던 것이 지나갈 때는 자세히 안 보고 지나갔기 때문에 몰랐지만 내부는 분식집 같지 않게 이쁜 인테리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뭐랄까 간판만 우리 할머니에서 역전 할머니로 바꿔서 영업을 해도 전혀 위화감이 안들정도로 세련된 인테리어였습니다.
아무 정보가 없어서 뭐가 맛있고 뭘 먹어야 할지 위에 나무로 된 메뉴도 보고 주방 쪽에 있는 메뉴판 쪽으로 이동해서도 봤지만 너무 주방 쪽만 쳐다보면서 메뉴를 고르고 있으면 사장님이 좀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서 옆에 키오스크에서 천천히 보고 있는데 신부님이 대뜸 말을 안 하고 있다가 "카드!" 이러길래 저도 모르게 드렸습니다.
주문을 하고 키오스크에서 영수증이 나오길래 어떤 메뉴를 시켰나 궁금했는데 가래떡세트(떡 + 어묵 + 순대), 국물비빔밥, 쿨피스, + 콜라(추가) 이렇게 시켰더군요. 기본으로 시긴 것 같은데 배고픔이 더욱 증폭되길 시작했습니다.

예비 신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핸드폰도 했다가 배고픔이 한계가 왔을 때쯤 오늘의 메뉴가 등장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데도 다시 먹고 싶어 지네요.) 우선 깔끔하게 나온 것, "그릇이 예전에는 연두색에 더 가까웠던 거 같은데"라는 생각에 있다가 머릿속이 희미해지더니 의식의 흐름대로 초등학교 다녔을 때 예전 문방구 옆에 진짜로 할머니가 해주던 떡볶이 집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설탕이랑 미원을 많이 넣으셔서 지금 먹으라 그러면 많이 먹지는 못하겠지만 용돈 5천 원 받았을 때 친구들이랑 풀세트로 시키던 그 시절 그런 느낌이 났습니다. 사실 여기서 더 들어가서 추억의 디테일이라고 한다면 이 초록그릇에 비닐을 씌었으면 디테일도 살면서 추억 냄새 솔솔 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먼저 떡볶이입니다. 일반 쌀, 밀떡보다 두꺼운 것이 씹기에는 너무 좋았고 떡볶이국물을 떠봤는데 밥을 비벼먹고 싶은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몇 개 없어서 너무 비싸다는 느낌이었지만 가래떡임을 간과했던 거 같습니다. 두줄 먹고 포만감이 몰려오더라고요.
열심히 먹고 있는데 예비 신부님이 어묵 한 개를 다 먹고 혼자 끙끙하길래 무얼 만드나 유심히 지켜보는데 말하기 전까지도 몰랐지만 "자 만들었어 가래떡꼬치야"라고 하길래 모든 의문이 풀어졌지만 뭔가 기특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하여간 같이 있으면 소소하게 재밌는 일들이 많습니다.
언제나 모두에게 100% 만족이란 없듯이 어묵에 대해서는 좀 아쉬운 면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입맛이 다양하니 제일 기본으로 맛을 맞춘 것은 이해가 되나 옆에 고춧가루통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고, 어묵 모양은 훌륭하지만 뭐랄까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퉁퉁 불은 어묵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국물이 배어 있지 않은 느낌이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추운 겨울에 어묵국물로 몸을 녹이니 몸이 좋아라 했습니다.
순대도 안에 떡이 든 것이 일반 순대에 비해 맛에 더 신경을 쓰신 것 같고 보통 다 먹을 때쯤 되면 순대가 삐쩍 마르기 마련인데 마지막까지 쫀득함이 살아 있어서 좋았습니다. 매장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순대를 좋아해서 할 말이 많지만, 순대를 먹으면 간, 허파, 염통을 좋아해서 있으면 꼭 시켜 먹는데 우송대 주변에도 그렇고 대전에 내장을 파는 곳들이 하나 둘 줄어서 좀 아쉬운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물가상승도 그렇고 사람들이 내장을 먹지 않아 수요가 별로 없어지는 것도 있는 것 같고 보통 매장에서 관리하기도 힘든 부분도 있으니 이해는 갑니다.
국물비빔밥도 떡볶이 국물을 퍼서 밥알이 촉촉하게 스며들게 한 다음에 떠먹어 봤는데 맛있게 먹었고 튀김도 끝까지 바삭바삭했고 김말이까지 먹기에는 너무 배가 불러서 먹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대식가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지인이 뷔페를 데려가도 너랑 가면 본전은 뽑으니깐 돈이 아깝지 않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는 하는데 적은 줄 알아서 양을 무시했던 가래떡 세트 배, 많이 불렀습니다.
매장에 방문했을 때 저희밖에 있지 않아서 혹시 잘 못 온 건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과는 다르게 매장 안에 있으면서 포장하러 오신 분들도 계셨고 배달 알림도 지속적으로 울리고 배달 기사님들도 수시로 드나드는 모습에 여기 잘 찾아온 게 맞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맛집을 오면 유리창이 잘 닦였네 테이블에 끈끈함이 있어서 찝찝하네라는 예민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창문을 바라봅니다. 먹고 있는 동안 입구가 20번 정도 열고 닫히고를 했던 거 같은데 아직도 유리창에 김이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떡볶이 집에 와이파이도 있고 키오스크도 있고 유투버 헷님먹방영상도 끊임없이 나오고 인테리어며 맛이며 여러모로 분식집이 이뻐졌다는 느낌도 받으면서 이상 마치겠습니다.
- 우리 할머니 떡볶이 우송대점(자양점)
- 영업시간 11:00 ~ 22:30
- 주차는 우송대 실전네거리 뒤편 골목이나 오르막길에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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